반해 오늘 우리는 시조, 그 중 한정류시조를 고찰하면서 진정한 우리 조상의 멋과 흥, 풍류를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자연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자연 속에서 근심 없이 여유롭게 지내는 모습을 공부하고 또한 현대에 사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고민 할 것이다.
Ⅰ. 들어가며
국문학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 외국에 소개할 때, 외국문학과는 다른 가장 독특한 ‘한국적’양식 하나만 꼽으라면 시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시에서 차지하는 시조의 문학적 위상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먼저 시조는 한국 시가문학사에 나타난 여러 갈래 가운데 가장 정제된
국문시가인 시조를 그렇듯 많이 남긴 경우는 이세보가 유일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시조창작을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가 그가 다루었던 다양한 질료와 주제 면이다. 자기 시대와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걱정한 시조를 비롯하여 유
흔히 사설시조라고 분류하는 것으로 송강이 최초로 지었다. 지금까지 장진주사의 연구를 살펴보면 "단장의 비애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누런 해 흰 달 아래에,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때에 반쯤 취하여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이 노래를 부르던 그때 그의 풍류인들 그 얼마나 비장하였으리”라
김천택이 노래하고 있는 이념의 세계는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즉 조선 왕조가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고 철저하게 교육해 온 바의 성리학적 통치이념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김천택은 양반의 정신적 지주인 유가사상을 수용해 양반 계층과의 사상적 정신적 동일성을 획득하고 나아가 전쟁 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