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지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적자를 보이다가, 한국의 공업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대미흑자를 이루게 되었고, 이후 1980년대 후반 대미 흑자규모가 커지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 불균형 시정압력과 통상마찰로 인한 대미수입확대,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미국시장진출
통상 문제를 해결한다.
2) 국제적 회담에서 포스코측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
- 미국 철강 산업의 피해는 철강수입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최대 5%의 관세부과를 요청하여 규제강도를 낮춘다. 그리고 한미철강협의회, 한미외교장 관 회담 등에서 포스코측의 의견을 적극 개진한
통상마찰을 지혜롭게 해결 할 수밖에 없다. 이중에서도 미국은 한국과의 교역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나라이다. 이러한 미국과의 통상마찰사례인 포스코의 대미통상마찰을 분석함으로서 그 원인과 한국기업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점차 강대국들의 보호무역주의가
열연은 약 75만톤 내외로서 미국합작 자회사인 UPI에 냉연 소재로 전량 공급되고 있었다.(피츠버그 시 지역경제발전에 기여)
->미국인이 포스코의 대주주인 점을 강조
2) 유능한 현지통상전문가를 고용한 다음, 그를 통해 미국의회와 관련부처를 대상으로 포 스코의 입장을 적극 전달
경영 및 노하우 등 소프트 부문)의 제공자로서 또한 매우 중요한 안보파트너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만큼
통상마찰을 신중히 다루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한미 간의 통상마찰의 개괄적인 역사를 살펴보며, 철강업에서의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포스코의 2001년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