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제적 율령관제도 많이 변화하게 된다. 수재․명경 중시의 공거제나 관음우대 등의 귀족제적 관제는 이미 당초부터 방기되었게 그 한 예이다.
그 후 당조가 기울어져 가는 과정을 환관의 전횡과 군벌세력의 등장으로 파악하여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이에 당대 지배층의 변천과 그 성격을
귀족들이 관료가 되는 수단으로 변질하게 됨.
오
⑴ 222년에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오름
⑵ 영역: 양자강 이남 지역
⑶ 원래 오가 다스리던 지방은 저습지로 살기에 적합하지 않고 인구밀도도 낮은 곳이었으나 오나라가 들어선 이후 개발이 시작된다. 이후 이 지방만 다스리는 왕조가 6개 있었는데
귀족제의 변질과정의 문제는 결코 별개의 과제로 다루어져야 할 성질은 아니다. 이 두 문제는 수당조 국가권력과 관련하여 지배층의 성격을 규명하는 기본적인 과제이고, 나아가 수당제국을 근간으로 하는 동아시아 세계 또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본질과도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당의 국가권력
이념을 규명하는 작업과 함께 이러한 여러 제도가 현실과 괴리되어 갈 때 여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현상에 대하여 어떠한 사적 의의를 부여할 것인가의 작업도 중요하다. 이에 당초 정치에서 나타난 여러 현상을 관료제의 전개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당초 지배층의 성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귀족사회의 구조와 내용을 심화하면서 대국적인 서술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이 궁기시정(宮崎市定)의 《구품관인법의 연구(九品官人法の硏究)》이다. 궁기시정은 귀족제를 군주권(君主權)을 기반으로 하는 관료제와 대립시켜 논술하고, 북주정권(北周政權)이 종ㄹ의 귀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