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고대국가
우리의 고대사를 돌아보면 중국이나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 지역이나 중남미, 그리고 유럽지역에 비해 문화유산이 위축될 만큼 적다. 우리나라에는 전쟁이나 난리가 많았던 만큼 고대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을 찾아보면 본래부터 많이 만들어지지
집현전에 근무했던 학사와 관원의 숫자는 100명이 넘었다. 이러한 집현전의 설치와 운용에 대한 관심은 신료들 쪽에서 먼저 나타났다.
정종대까지 집현전이라는 명칭과 기구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특별한 기능을 하거나 담당 관원은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1399년(정종 1) 대사헌 조박이 집현전에 서적
기능공 그리고 어부들까지도 장서를 소유하고 있었다. 뉴 잉글랜드 가정에서는 대부분 소규모의 장서를 소유하였으나 예외적으로 큰 도서관도 있었다. 17세기 중엽의 가장 큰 도서관은 존 윈드롭의 도서관으로 도서수가 1,000권을 넘었고, 17세기 말엽의 가장 큰 개인도서관은 코튼 마더의 도서관으로 172
집현전의 기능이 대폭 확대되어 왕권을 뒷받침해 주게 됨으로서, 의정부 재상들의 지나친 권력 증대를 견제하고 왕권의 신장을 도모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의정부 대신과 의견이 상충되는 문제를 집현전의 동의를 얻어서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세종 때에는 의정부의 합의 체제가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