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물물교환 형식에 기초를 두고 행해졌다.
침략 전 전형적인 사회 구조는 왕국이었다. 대륙의 많은 부분은 황폐하고 거주할 수 없었다. 경작되어진 지역들은 왕의 땅과 교회의 땅 그리고 봉주들이 소유한 부동산과 자유농민이 소유한 농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왕은 모든 땅에
농민 다수에게 혜택을 주었다. 이는 농업일손의 부족과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세력관계의 출현 등의 영향을 받았을것이다. 대혁명기의
노동 이동의 자유가 노동과 임금에 대한 통제를 불가능하게 한것이다.
조세의 체제도 대혁명기의 큰 변화를 겪었다. 혁명기의회는 앙시앙레즘하
농민들은 영주제적 부과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는데 이것이 봉건제폐지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반은 이 두 가지 발전을 합하더라도 그것은 한 사회질서를 폐지하고 다른 사회질서를 대치시켰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혁명에 관한 기존의 이론이 설혹 신화가 아닐지라도 그에 매우 유사한 것
그들이 봉건제의 기본 성격을 그 상부구조인 군사제도나 법제도 또는 지방분권적 통치체제의 측면에서 파악하기보다는 이들의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봉건제의 개념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석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봉건제를 인류역사 발전의
아니라 항상 정치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봉건제가 경제외적 강제에 기반을 둔 생산양식이기 때문이다. 즉 봉건제에서는 상업이 아니라 정복이 일차적인 팽창의 형태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몇 세기 동안 동구와 서구간의 주요 매개는 군사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