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나이는 고작 3살 이였다고 한다. 아마 이 기억이 용궁부연록을 만들지 않았나 싶었다. 죽은 자신의 주군을 향한 추억과 아품이 느껴져 뒤도 안 돌아보고 산 속으로 가버렸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나는 금오신화를 통해 한국 고소설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려
[‘김시습의 금오신화독후감‘ 본문 내용 中 발췌]
이러한 작품의 배경만으로도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한국 최초의 소설은 어떠한 문체와 내용, 그리고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을까? 나는 이러한 호기심으로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어 읽게 되었다. 그리곤 새삼
매월당 김시습은 신라시조 김알지의 후손이다. 선대에는 왕족들과 대문장가등의 화려한 가문이었으나 그는 한미한 하급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외조부에게서 千字文을 배우고 2세에는 한문에 통하였으며, 3세에는 作詩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正俗」.「字說」.「小學」등을 배웠다
Ⅰ. 김시습의 사상적 배경
김시습이 살다간 조선초기는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사상 등 각 방면에 있어서 매우 큰 변화와 갈등의 양상이 드러난 때였다.
특히 사상적 측면에서 조선은 麗末의 쇠퇴한 불교를 배척하는 한편,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유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게 되었다. 이것
금오신화」
20대를 온통 방랑으로 보냈던 김시습은 경주의 금오산에 정착하여 「금오신화」를 짓는데, 그는 이 소설을 지은 뒤,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며 그것은 석실에 감추었다고 한다. 그가 펼쳐 보인 깊은 고뇌와 이상이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 ․ 용납되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