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성만이 추구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주자학이 한국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되는 기반이 구축되었으며, 유학사상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7. 이황과 이이의 비교 분석
1) 이황 李滉 [1501-1570]
조선시대의 학자·문신.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 시호는 문순(文
교육을 통해 길러 내고자 하는 인간상을 정립하는데 그것이 바로 ‘선비’이다.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선비의식은 사대부들의 규범으로 정착되고, 성리학적 교육의 과제는 선비의식의 함양과 그 실천으로 귀착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여겨지는 퇴계 이황이 주목할 만한
성리학의 교육관성리학에서의 교육
자연·우주처럼 성실함은 오직 성인에게만 해당되는 것
나머지 는 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들
→ 인간들은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誠之者)을 삶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하며 이런 자세가 바로 인간의 길(人之道)로 여겨졌던 것이다.
즉, 성실
Ⅰ. 서론
퇴계의 철학 사상은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사단칠정 논쟁에서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퇴계가 서울에 살던 53세 때 이웃에 사는 추만 정지운이「천명도설」을 지어 보여주었는데, 퇴계는「천명도설」의 내용 중 사단칠정에 관한 부분을 개정한 데서 비롯된다.
기대승(奇大升)과 이황과 주고받은 왕복 서한
.사단칠정은 성리학(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로, 사단(四端-인[仁]․의[義]․예[禮]․지[智])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칠정(七情-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