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정교분리’를 내세워 정치와 거리두기를 하였거나 대다수 민중의 기대와 부합되지 않는 ‘친정부’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특별히 3.1운동전후의 시기에서는 주류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중추역할을 했던 것이다.
본 글에서는 3.1운동에 기독교가 적극 참여하게 된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강행했던 국가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는 국가들의 저항의식에서 출발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결,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반식민주의적 이념은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이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3.1운동, 1차 대전 이후 미
대한제국 수립 전후시기의 세계는 열강의 식민지 영통분할.재분할경쟁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은 이때에 이르러 러시아와 일본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삼국간섭에 굴복했던 일본은 중국의 의화단혁명 이후 러시아를 견제코자 하는 영국
민족에게 3.1운동이 주는 교훈은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역사적 사건이 시대를 두고 새롭게 그 의의와 해석이 주어질 수 있을 때 그 사건은 생명력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시대는 바뀌지만 그 사건이 주는 교훈과 의미가 시대와 더불어 새롭게 해석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3.
독립을 청원하는 1만명 서명부를 만들어 보내려는 노력도 시도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오랜 지속과 1917년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이 연합국 편에 섬으로 인해 전세는 결정적으로 동맹국쪽에 불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의 승전을 전제로 이루어지던 독립운동의 계획은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