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역사서술은 사관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발전 과정은 백 낙준 박사의 선교사관에서 시작하여 민경배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을 거쳐서 주 재용교수의 민중교회사관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사관은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선교사관은 진보 진영으로
연구에서 벗어나 사회사와 민중사로 확대되면서 구술자료는 문서자료의 한계를 채워줄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술자료가 대두된 이유는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째, 문서자료의 부족 문제에서 비롯된다. 일제시대 자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변측 자료는 한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서 론
제 1 절 연구의 목적과 문제제기
한국 개신교 선교 100년의 역사를 회고해 보건대 무엇보다도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다. 금세기 선교 역사상 유래없는 일이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에 비례하여 질적인 성장도 보폭을 맞추어왔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
것
23. 의미가 다른 두 성분을 접속한 것
24. 접속되는 성분들 간의 눈리적 연결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
25. 어순이 잘못된 것
26. 표현 방식이 부자연스러운 것(불필요한 요소를 쓴 것, 외국어 투)
27. 유사 요소가 중복된 것
28. 중의성을 띈 것
29. 필요 이상으로 피동․사동문을 쓴 것
30. 기타
양식비평, 양식사 연구는 구전(口傳) 과정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본문에서 구전 단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글로 적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양식도 ‘삶의 자리’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문서 작성 단계에 사용되었으리라 짐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