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1919년 한국 기독교의 전폭적인 참여로 3.1운동이 발발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결과 한민족은 심각한 좌절에 빠졌으며 한국교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얻지 못한 좌절감과 가족과 교우와 이웃을 잃은 슬픔 속에 잠겨 있을 때 교회는 그들의 소망을 하늘
1. 생애 요약 임영섭, 한국기독교순교자(100인전기), (서울: 도서출판양문, 1991), p. 191.
1902년 출생, 만 6세에 아버지 손종일과 함께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13년 칠원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5년 일제의 궁성요배를 거절하므로 퇴학당하였다가 선교사 멕레의 향의로 복교하여 1917년에 졸업한다.
김교신을 비롯한 12명이 일 년간 투옥되었다. 당시 《성서조선》158호(1942년 3월) 권두언 〈조와(弔蛙)〉에 나타난 글의 내용은 극심한 겨울 추위에 다 얼어죽고 용케 살아남은 두 세 마리의 개구리에 대한 단상(斷想)이다. 이 글이 당시 일본경찰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이로 인해 전국의 독자들도 구속되
김교신 평전
(한국교회사)
1장 기독교의 교훈은 좋으나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김교신은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교신이 세 살 때인 이십대 초반 사망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갈망으로 이끈 것 같다. 어머니는 유가적 분위기와 기독교 신앙이 어우러지면서 언행이 엄격하고 가
김교신 평전을 읽고
1장 기독교의 교훈은 좋으나
김교신은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김교신의 아버지는 김영희였다. 그는 1903년 이십대 초반에 폐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로인해 김교신은 육신의 아버지와 맺지 못한 인격적인 관계를 하나님과 맺어 갔다. 아버지의 이른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