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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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교신 평전을 읽고
1장 기독교의 교훈은 좋으나
김교신은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김교신의 아버지는 김영희였다. 그는 1903년 이십대 초반에 폐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로인해 김교신은 육신의 아버지와 맺지 못한 인격적인 관계를 하나님과 맺어 갔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갈망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김교신은 학창 시절 기독교를 하나의 도덕이나 윤리적 가르침으로는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도와 기적은 미신 혹은 비과학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유교적 윤리에 충실했고, 자연과학을 전적으로 신뢰했다.l 그는 이처럼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1919년에는 함흥에서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2장 일본 유학과 입신의 여정
유학 생활 중에 신앙의 토대를 닦아 주었던 스승 우치무라 간조를 만난다. 그는 1920년 처음 교회에 갔고, 몇 개월밖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조직 교회에 대한 한계점을 알 수 있었다. 우치무라 사상의 핵심은 일본적 기독교와 무교회주의다. 일본적 기독교는 외국인의 중재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일본인이 직접 받은 기독교를 의미한다. 무교회주의는 신앙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는 것, 교회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것, 교회 없이 기독교 신앙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상이다.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신자들의 모임이나 집회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평신도 중심을 원칙으로 한다. 김교신은 일본과 예수님을 사랑했던 우치무라에게서 기독교 신앙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그는 유교가 말하는 성인의 길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죄인을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었다.
3장 조선을 성서 위에 세워야
김교신은 조선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때 송별회에서 모 학교 교장이 던진 권면은 평생 그의 뇌리에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이다.하나님과 천국에 마음을 둘 때 그것이 보물이 된다는 것이다.
김교신은 1927년 일본에서 만난 동료들과 성서조선을 창간한다. 이를 편찬한 목적은‘조선을 성서화’하기 위해서였다. 김교신의 조선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류석동은 조선 사랑이 김교신의 적혈구 전부까지 점령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조선은 인류사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무대였다. 김교신은 조선인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의롭게 살아가지 못한 죄로 이해했다. 김교신은 성서 위에 조선을 굳건히 세움으로써 조선을 성서화 하고, 조선인이 성서의 진리로 살기를 바랐다. 여기에 조선의 구원이 있다고 믿었다.
5장 양칼 같은 지리 선생
김교신의 수업은 학과 공부 자체보다 독립된 인격과 민족애를 간직하기를 원했으며 인성 교육도 중시했다. 김교신은 양정학교에 ‘물에 산에’라는 등산부를 만들었다. 그는 조선의 국토를 통해 조선의 역사, 조선인의 정신, 조선인의 마음과 생활을 가르쳐 주고 싶어 했다.‘물에 산에’는 지덕체를 겸비한 통합적 교육이었다. 한발 더 나간다면 자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6장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 생의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