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문학관
1.1 김시습의 일생
김시습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그의 친척이며 집현전 학사인 최치운이 그의 재주에 경탄
금오산실을 복책하였다. 이렇게 하여 김시습은 30세부터 37세까지 금오산실에 은거하 면서 구우의 ‘전등신화’를 탐독하고, ‘金鰲新話’를 지었을 것이다.
③ 금오기 (金鰲期) : 31~36세
김시습은 31세 되는 세조 11년(1465) 봄에 짐을 꾸려 경주로 내려가서 경주 남산 금오산 금 오산실을 복책하고
1.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
• 김시습의 저항적 생애김시습(1435~ 1493)은 세종 17년 서울 교외에서 충순위(忠順衛)의 벼슬을 하던 가난한 문인(文人)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아이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 돌도 되지 않았던 어느날, 이웃에 살고 있던 최치운(崔致雲)
작가의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였는지, 3.4조 또는 4.4조로 연속되는 ‘가사(歌辭)’가 발생하게 되었다. 성종 때 지어진 정극인의 ‘상춘곡’은 가사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제 다루려는 조선전기부터 임란 전까지의 소설문학을 보면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란 작품이 있다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일생은 동가숙서가식하는 떠돌이의 삶이었지만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지식인의 의무에는 누구보다 엄격하였으며, 그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