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근 등이 체포되고 김달삼과 조몽구 정도가 탈출피신하였다. 2월 7일 안덕면 사계리에서는 경찰구타사건 2월 7일, 안덕면 사계리에 순찰나갔던 안덕지서 소속 경찰관이 동네 청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한 명은 도망가고 또 한 명은 잡혀 모래밭에 ‘묻히다 만’ 미수사건이었다.
이 발생하였으며, 2월 9
김양근, 김대진 등 지도급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조몽구와 김달삼 등만 겨우 빠져나갔다. 그런데 위 보고서에서 특이한 것은 남로당원 63명이 곧 풀려났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까지도 남로당은 비합법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을 체포할 때는 당원이어서가 아니라 미군
Ⅰ. 머리말
2013년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65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 탓인지 올해에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지슬’이라는 독립영화가 3월 21일에 개봉을 했고, 독립영화로는 최고의 선전을 한 채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의 사람들에게 내륙과 동떨어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은 생소하
Ⅰ. 서론
예부터 제주도는 ‘땅은 척박하고 민중은 가난한’ 변방이었다.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 그대로 민중의 처지는 말보다도 못했고, 중앙정부의 온갖 착취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주민중은 어떠한 중앙정부의 착취에도 외세의 침탈에도 전
Ⅰ. 개요
19세기 제주도에서의 최초의 농민봉기는 1813년에 발생하였다. 이 농민봉기는 제주도 중면의 풍헌 양재해를 위시하여 김익강, 고덕호, 강필만 등이 동년 12월 6일 밤에 봉기하기로 모의하다가 윤광종의 밀고로 폭로된 사건이었다. 양재해는 1811년 평안도에서 농민전쟁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