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소련의 정책을 배경으로 공산당의 남북분립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만한 인물을 등용했는데, 그것이 중국공산당 밑에 조선공작단을 만들어 귀국한 김일성 등의 빨치산 그룹이었다.
- 김일성은 평양의 소련군위사령부부사령 직함으로 북조선에 들어오게 됨.
북한의 군사비가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전의 20% 미만에서 30% 선으로 급증했다.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도 강화되었다. 1968년 북한은 청와대 기습사건, 푸애를로호 납치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을 감행하였다.
- 주체사상의 대두
김일성은 1964년 소련에서 흐루시초프가 축출되고 19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 개방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
①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화
김정은이 김정일과 함께 군 열병식에 참여하는 등 군 충성심을 유도하고 있
엘리트층의 권력핵심은 운명공동체로서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음
당 조직을 정비, 인사개편을 완료했으며
김일성이라는 혁명가들로부터 모든 것을 가로 챈 엉터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은 가짜 김일성설에 대해 언급한 뒤 자신들은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하여 두각을 나타낸 다른 인물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으며 \"오늘날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일성은 1932-194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