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 잡학 등 국정 운영에 필요한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 더불어 서인-남인 연립정권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했기 때문에 퇴계 이황의 학문과 율곡의 학문이 활발한 교류를 통해 융합되는 면모를 보였다. 이는 후에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이론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던 김창협으로 이어진다.
Ⅱ. 한시의 종류별 구분과 성격
1. 한시의 개념
1) 정의
한자로 기록된 시로 좁은 의미에서는 한대(漢代)의 시를 일컫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로 해석할 때는 중국 및 주변의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로 쓴 시를 포함한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는 시가(詩歌), 악부(樂府)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중국의
Ⅰ. 녹동서원
영암에서 최초로 건립되었고 또 영암 유일의 사액서원인 녹동서원은 후일 영암에 유배되어 온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농암 김창협(農岩 金昌協) 부자가 추배되기는 하였으나 본래는 연촌 최덕지를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존양사라는 전주최씨 가문의 문중사우였다. 즉 녹동서원의
노론계(老論系) 문인들에 의해 당시(唐詩)는 물론 송시(宋詩)도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김창협(金昌協, 1651년~1708년)과 김창흡(金昌翕, 1653년~1722년)은 이러한 문단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 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