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민중들의 삶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현감 퇴임 후의 만년에는 지방의 권농(勸農)을 지내기도 했는데 1796년에는 용주사 부모은중경의 삽화, 1797년에는 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이러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장사로 부를 축적한 김한태
단원 김홍도 생애와 김홍도 풍속화 작품 감상
1. 단원 김홍도 생애
김홍도는 조선시대에 가장 뛰어났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영조 21년(1745)에 태어나 정조 재위 24년을 거쳐 순조 6년(1806?)경까지 살았다고 본다. 졸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기년이 들어있는 그의 유작을 보면 환갑까지는 생존해 있
김홍도 등의 화원들의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그들 가난한 여항문인들은 신분제의 벽과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토해냈다. 중촌의 부유한 중인들은 풍악을 울리지만, 그들의 고달픈 생활은 평민과 친근한 것 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점점 확산돼 근대 시민사회의 싹으로 자라났던 여항문학운동 어린
1. 풍속화의 개요
1) 풍속화의 개념
'풍속화'하면 일반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모습 등을 주제한 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신상, 종교, 정치, 생활, 사상 등 삶의 온갖 모습이 펼쳐져 있다. 필요한 식량을 안전하게 많이 확보하기를 절실하게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