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동란섭필>은 ‘동란재’라는 장소에서 생각을 적어 내려간 글로 순서와 논리에 따라 서술하지 않은 무형식의 글이다. 연암 박지원이 수필과 같은 신변잡기적 특성을 지닌 글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것은 <동란섭필>의 주 내용이 주자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통해 연암이 주자학적 전통 입장을 떠나지는 않고 그 제도권 안에서 있으면서도, 고증학이나 양명학, 나아가서는 서학과 같은 이단 사조에 대해서까지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명호,1988,「연행록의 전통과 열하일기」,『한국한문학연구』vol11.한국한문학회,45쪽 참조
열하일
연행(燕行) 체험의 일면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시어라고 볼 수 있다. ‘황성(皇城)이 거의냥냐’로 시작하는 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는 연경에 도착한 감흥을 형상화하고자 한 작품인데, 이를 표상하는 제재로서 ‘연수’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만리’와 같은 지난 여정을 돌아봄으로써
일기라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명작 기행문을 쓰게 된다. 그 후 50세에 선공감 감역 등 말직에 머물다가 의금부도사, 한성부 판관, 안의현감, 면천군수등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1805년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상으로 정리 하
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에서 영․ 정조 시대를 근대로 잡은 구체적인 이유들을 찾고자 한다. 이에 <<한국문학사>>의 <근대 의식의 성장>을 요약 정리할 것이며, 나아가 당시 예외적 개인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시조의 붕괴 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근대 의식의 성장
제 1 절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