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로써 예정(禮正), 정교(政敎), 교화(敎化), 덕치(德治)의 바탕을 이룩해 놓았다. 그리고 <서>, <춘추>에서 역사 및 역사관을 바로잡았으니 이 또한 중국의 학문 및 정치철학과 예교와 덕치의 대통을 세웠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전하는 십삼 경이나 사서는 공자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공자에 대한 지식이 옳은지, creel의 견해가 옳은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만큼 섣부르고 위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개혁가 민주주의자로서의 공자를 서술하려는 저자는 근본취지는 좋았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다소 억지 비슷한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공자의 유 집단에 대한 교
나무들이 배열된 시각적 심상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연속성을 강화하는 동사라는 점에서 시·공간의 전환이 비약적인 연행(燕行) 체험의 일면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시어라고 볼 수 있다. ‘황성(皇城)이 거의냥냐’로 시작하는 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는 연경에 도착한 감흥을 형상화하고자
분석하는 그들의 접근, 사물들을 다스리는 공통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과 통한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고의 체계에서 정말로 다르다면 태도, 신념, 가치, 선호와 같은 심리적 특성들에서 나타나는 문화간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세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