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유수원
이용후생학파의 선구자 유수원(1694-1755)은 북학파의 선구자 역할, 상공업 진흥을 위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화 전문화 실현과 상인 간의 합자를 통한 경영 규모의 확대 및 상인이 생산자를 고용하여 생산과 판매를 주관 할 것을 주장하였다. 자신의 저서 迂書(우서)에서 국허민빈의 원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조선조의 통치이념인 주자학이 16세기의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과 17세기의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 및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을 거치면서 한민족의 자주성과 노서민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사상으로 그 한계성을 드러내었다. 주자학의 정치적 목적인 차별
聾巖 李賢輔는 1467년(세조 13년)7월 29일 安東 禮安 汾川里에서 태어났다. 字는 斐仲, 號는 聾巖,雪靈翁이고 本貫은 永川이며, 諡號는 孝節公이다.
聾巖은 자헌대부 의정부 좌참찬에 증직된 李欽과 호군이었던 권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才致가 뛰어나고 골상이 비상하였다. 9세에
안동의 역사적 배경
신라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되었다가 고구려에 인접한 관계로 한때는 고구려에 속하여 굴화현(屈火縣)으로 불리었으며 진흥왕때 부터는 계속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경덕왕(757년)때 군현제도(郡縣制度)의 개혁으로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일계군(一界郡)
전통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은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하여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자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연이 조화가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현실 세계를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