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예수의 축귀사역을 예수의 공생애를 통해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증거로 보았기 때문이다.(누가 11:20) 누가는 예수의 옆에서 십자가형으로 죽어가던 사형수가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낙원을 약속받았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예수를 죄인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3-17; 눅 5:27-32)
가족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한데 속한 자로서 서로에게 충실하며 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과연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있어 사랑의 대상을 종교적 관습
시작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도덕(=선)을 중요시해왔다. 하지만 그게 앞서 과연 우리가 이렇게 중요시하는 도덕성이라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며, 이런 질문은 (도덕의 합리적 기초를 발견하는 데 애쓰기보다는) 도덕의 계보학에 대한 탐구를 필요로 한다.
1.도덕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자”(אשרי: 아스레이)라는 표현은 엄청난 행복을 소유한 자,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가리키는 바 더 이상 비교할 수 없는 행복자란 누구인가에 대해 본문은 장엄하고도 간결하게 단정을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