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부친 정재원은 남인파의 양반으로서 일찍부터 벼슬하여 지방수령을 역임하였으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참사를 계기로 관직을 물러나, 향리에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4세 때(1776) 아버지가 호조좌낭(戶曹左朗)으로 다시 기용됨에 따라 서울로 올라온 다산은, 16세때에 이미 실학자
1. 다산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다산 정약용은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 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명은 귀농이라 했다. 자는 미용또는 송보이고, 호는 사암인데, 그 외에도 다산, 별초, 자하도
Ⅰ. 답사 후기
(1) 답사경로
-5월 4일 아침일찍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리로 향했다.
자가용을 타고 강남에서 올림픽 대로를 따라 가는데 마침 연휴와 맞물려 나온 많은 차들로 인해 3시간 가량 걸려 정약용 생가 길목에 들어섰다. 처음 입구에서 볼 때 생각 했던거와는 달
다산초당 명칭의 유래와 역사.
다산초당은 본래 윤단이란 사람이 건립하여 서당으로 쓰던 건물인데 다산 선생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건물입니다. 본래는 초가집이었는데, 1936년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57년 해남 윤씨의 도움을 받아 기와집으로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여기서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