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다산에게 정조는 임무를 맡겼다. 정조가 기유년(28세, 1789) 겨울에 한강에 부교(浮橋:배다리)를 놓을 때 다산이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을 상기하면서, 다산에게 수원화성의 설계도를 작성해 바치라고 명한 것이다. 신도시 수원화성은 정조가 사도세자를 위해 계획한 각별한 것이었다.
정약용의 업적
1. 학문에서의 업적다산(茶山)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조 후기의 학자로 정치, 경제, 역리, 지리, 문학,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500여권에 달하는 이 저술들은 깊고도 넓은 학문 세계로 인하여 오늘날
으로 인해 많은 견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현 재의 정권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어찌 하였든 정조가 한 많은 업적 중에는 정약용의 머리와 손을 빌린것이 많이 있다. 화성축조 한강배다리 등등. 정약용과 정조는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였던 것이 확실하다. 최근 들어 정약용에 관심이 많이 졌는데
했고,신진 학자들을 왕실에 두어 왕권의 학문적 뒷받임을 이루고자 했다.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만드는 것 역시 왕권 강화의 일환이다. 수원을 새 장소로 옮기고 여기에 조선 최고의 성곽을 쌓고 또 장용외영을 화성에 배치한 것도 모두 왕권강화를 위한 정조의 원대한 구상중에 하나라고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