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왕검이다. 당요가 즉위한 지 50년 되던 경인년에 평양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했다. 다시 백악(白岳)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니 아사달은 또한 궁홀산(弓忽山)이라고도 하며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1천 5백 년 동안 다스리다가 중국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아이를 배어지이다'하였다. 환웅이 이에 잠깐 변하여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가 단군왕검이다. 왕검은 요(堯)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 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옮겼는데 이곳을 궁흘산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하였
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15년, 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 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왕에게 망하고, 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東明王(朱蒙, 성은 高)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 가지가 전한다.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왕검은 1500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나라 호왕이 을묘년에 즉위하면서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구월산으로 옮겼다가 뒤에 다시 돌아와 아사달로 은거, 산신이 되어, 1908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삼국유사)
2. 요 점
1) 형식 : 신화(건국신화, 개국 신화
신화를 통해 고조선 성립 배경을 알아보고, 단군신화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시오.
① 단군신화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우리 역사서의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