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하여 집대성해 놓아 고대의 정치, 사회, 문화, 생활상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연은『삼국유사』를 충렬왕 7~9년(1281~1283) 사이에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몽고의 침략과 그에 따른 항쟁으로 국토가 피폐하고 지배층의 모순이 극명히 드러나며,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던 때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8세기 말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귀족들의 내부 분열과,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상류계급이 될 수 없었던 6두품(六頭品)세력의 불만이 커졌다. 그리고 경주 귀족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세금의 지나친 수탈에 따른 농민의 반란 등은 결국 경주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에
1. 들어가는 말
삼국 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문화의 폭이 넓어졌고, 국민 사상이 통합되어 국력을 강화 할 수 있었다. 불교는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로서의 체제가 정비될 무렵에 전래되었다. 고구려에서는 소수림왕 때에, 백제에서는 침류왕 때에 공인되었다. 그리고 신라에는 5세기 중엽에 전래되
반가사유상이 모두 우리나라의 백제시대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앙드레 말로나 칼 야스퍼스가 우리나라에 와서 석굴암 본존불을 보았다면 그들의 선택에도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토함산(745m) 동쪽 산자락 해발 565미터 지점에 세워진 석굴암은 본래 신라 경덕왕 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