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의 진정한 의의라는 것은 현재 혹은 미래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그로 인해 좀 더 나은 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찾아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사 연구의 의의 또한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조 후기의 학자로 정치, 경제, 역리, 지리, 문학,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500여권에 달하는 이 저술들은 깊고도 넓은 학문 세계로 인하여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우리의 고전이 되고 있다
정약용의 대표적
Ⅰ. 實學이란?
실학이란 용어 자체가 조선후기의 실리를 강조하는 학문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실학이란 용어는 통시대성(通時代性)을 지니고 있고 어느 시대이든지 간에 그 시대에 있어서 현실성 또는 현실적 의의를 지니는 학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지나온 역사를 보았을 때, 앞선 시대에 대응하
서론(序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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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개혁바람이 뜨겁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쌍방이 좀 더 예전보다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만큼 사회는 차차 안정되어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조는 개혁의 산 증인인 정조와 그가 축조한 화성 그리고 수원을 발표 주제로 정했다. 파란만장한
사도세자가 잠든 현륭원을 바라보며 그 뒷산인 '화산'의 '花'를 따다가 팔달산 아래 신도시의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신도시 화성에 다시 '화성'이라는 이름으로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그 이듬해 일이었다.
화성은 정조의 남다른 의지와 지도력에 따라 여러 학자와 관료들의 지혜와 노력이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