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전자세에서 대립적 성격을 보이는 지배층과 민의 항전 자세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지배층과 민의 성격을 탐구하고 더 나아가 몽고전쟁 이후 나타나는 삼별초(三別抄) 항전의 의의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Ⅱ. 대몽항쟁의 배경
징키스칸의 진취적인 지도력을 선두로 그 세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펼치
여법진이 병사를 내어 출전해 한두번 패배해 돌아와 소보권에 청하길 창고 은을 꺼내 군사를 호궤하여 군사 마음을 진작시키자고 했다.
寶卷道:“賊來豈獨取我??何故向我求物!”
보권도 적래기독취아마 하고향아구물
소보권이 말했다. “적이 옴이 어찌 홀로 나만 취하겠는가? 어떤 이유로 나에
항전은 애국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신 집권자들의 사적인 권력 유지가 주요 목적이었고, 강화 천도는 무신 집권자 최우의 권력 연장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고려는 원의 요구에 따르거나, 아니면 무한히 고통을 참는 길밖에 없었다.
고려의 정복지는 모두 원의 일부
却說浙東賊?甫, 本是一個土匪, 糾合無賴子弟, 橫行?里.
각설절동적포구 본시일개토비 규합무뢰자제 횡행향리
土匪 [t?f?i] ① 지방 악한 ② 지방에서 일어나는 도둑의 떼 ③ 토박이 악질 ④ 토구
각설하고 절동의 포구는 본래 지방 악한으로 무뢰배를 규합해 마을에 횡행했다.
適因兩浙久安, 人不習戰,
却說江陰被陷, 明遺臣已亡了一半, 只有宜興、太湖、吳江、徽州等處, 尙有抗?的明臣。
각설강음피함 명유신이망료일반 지유의흥 태호 오강 휘주등처 상유항청적명신
遺臣 :①전대(前代)부터 남아 있는 신하(臣下) ②왕조(王朝)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구신(舊臣)
각설하고 강음이 함락을 당해 명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