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원군의 삶과 정치
1820(순조 20)∼1898(광무 2). 이름은 이하응,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며 영조의 현손으로 남연군 이구의 아들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이다. 헌종 9년(1843)에 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 천장 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 도총관 등 한직
조선책략의 유입, 반포를 계기로 위정척사파는 마침내 신사척사상소운동을 일으키는 등 민씨 정부규탄의 소리를 더욱 높였다.
이 때 안기영 등은 국왕의 이복형인 대원군의 서장자 이재선을 국왕으로 옹립하려고 하는 국왕폐립음모가 일어났다. 그러나 고변에 의해 사전에 적발되면서 고종은 안전할
조선 .중국 양국 간의 전통적 해금 , 조공관계를 근대 외교, 통상관계의 틀 속에서 재조정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마침 조선에서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한다. 청은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이홍장의 북양육군 3000명을 서울과 근교에 파견, 점령하고 곧 이어 흥선대원군을 납치해간다. 이
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역사를 역행한 시대착오론자'라는 평가와 '왕권 강화 및 국권 융성을 꾀한 개혁가'라는 평이 엇갈린다. 시대착오론자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본에 줄기차고 거세게 저항했던 흥선대원군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식민사관의 유산이라는 반론이 있다.
일본과 동맹을 추진하였고(1902년), 여기에 미국이 ‘비공식 회원국’으로 가세하였다. 러시아도 영일동맹에 대항하기 위하여 노불동맹을 동북아시아 지역까지 확대적용하려는 전략으로 대응한다. 이 같은 대립구도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점차 영향력 중복 주변부가 수적으로 감소하면서 무력적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