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원군의 삶과 정치
1820(순조 20)∼1898(광무 2). 이름은 이하응, 자는 시백, 호는 석파이며 영조의 현손으로 남연군 이구의 아들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이다. 헌종 9년(1843)에 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 천장 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 도총관 등 한직
1>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대립
1868년 (戊辰 고종5) 윤4월에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군(完和君 1868 - 1880)이 태어났다. 궁인 이씨는 살결이 희고 키가 훤칠한 미인이었는데 완화군을 낳고 영보당이라는 당호를 얻었다. 이 첫 왕자가 영보당의 미모와 고종의 후덕함이 조화된 결함 없는 용모를 가졌기에 완
흥선대원군의 일반적 평가
1. 흥선대원군의 상반된 평가
앞서 언급했듯 쇄국정책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당시 국세정세에 관한 안목이 부족했고 그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격에서 이러한 정책을 택하였다고 말한다. 특히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폐쇄적 외교노선을 통해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실시하게 된 경위
-조선 말기에 이르러 유입된 천주교가 기존의 주자학의 신념체계를 흔들어 놓았고 이러한 사상적 침투는 주자학적 사상에 젖어 있는 조선 왕조의 위정자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19세기 서구 세력의 군사, 종교, 경제적 침투는 조선인들에
외교운동을 강조하였던 것에 이어, 여기서 고종의 근대개혁 이념에 대한 재조명에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
2. 한국 근대정치사 왜곡 비판과 고종의 재평가
ꡔ고종시대의 재조명ꡕ은 서장인 ‘고종시대사 흐름의 재조명’이라는 논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제1부 ‘편견과 오류 비판’과 제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