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독자적인 방향을 찾았고 결국 우리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제국인 대학제국을 성립시킨다. 이 대한제국기는 구한말 어지러웠던 역사의 정가운데에 있는 시기로서 그 의의를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제국의 성립배경과 과정, 그리고 광무개혁에 관하여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국호를 대한으로 개정하여 내외에 선포한다. 그 결과 마침내 대한제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성립된 대한제국정부는 '옛것을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것을 참작한다.'는 구본신참의 원칙을 세워 개혁을 펼쳐 나간다. 일본에 기대어 개혁을 급격하게 단행한 갑오적원의 방식을 반성하고, 주
개혁하고, 상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한성은행과 대한천일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설치한다.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는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더 나아
대한, 왕을 황제라 칭한 후 황제즉위식을 갖는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은 이용익, 이채연 등을 등용해 광무개혁을 실시하고,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국제가 이 기간에 반포된다. 그러나 반외세적이고, 반제국주의를 주창한 대한제국을 일본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04년 러시아와
대한 전기 보급은 일제 침략과 더불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일제 강점기 동안 전기 공급은 주로 일본인과 상류층 또는 관공서, 회사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일반 가정의 전기 보급률은 무척 낮아서 1929년에는 약 6%, 1942년에 이르러서도 17.5%에 불과했다. 이런 보급률은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