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정관헌은 조적식 벽체에 석조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목조의 가는 기둥을 둘러 퇴를 두르듯이 짜여진 건물이다.
평성문 밖 지금 미국대사관 서쪽에는 2층 서양식 건물로 접견실 또는 연회장으로 쓰던 준명전이 있었고, 그 북쪽에 만희당 ·흠문각, 서쪽에 양복당 ·경효전 등이 있었는데,
함녕전에서 비롯된 대화재로 인해 경운궁은 또 한번 큰 시련을 겪는다. 중화전을 비롯한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궐내각사(闕內各司) 등 중심부에 있던 건물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경운궁(덕수궁)은 이전의 모습을 크게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석조전을 제외한 덕수궁의 모든 건물들은 이 이후
덕수궁의 범위가 어디까지 였다는가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이다. 1933년 경에는 궁내에 있던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철되었는데, 그 때 다행히 화를 면해 현존하고 있는 전각은 중화문, 중화전, 덕홍전, 함녕전, 즉조당, 준명당, 석어당, 광명문 등이다.
4. 해방 후의 덕수궁
1960년 대 들어서 덕수궁은 또다
경운궁에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타율적으로 결정된 것임으로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옳지 않음
선조, 광해군 시대의 경운궁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이 불타 없어져 선조는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저를 행궁으로 삼고 , 이곳을 시어소 또는 정릉동 행궁이라
덕수궁의 역사
덕수궁의 전신은 정릉동 행궁이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 밖으로 피란을 갔다가 돌아왔더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세조의 장손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곳을 행궁으로 삼게 되었는데, 그 건물의 영역과 규모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