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불교, 도교 등)을 추구하고, 어느 것에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다. 정치, 문학, 생활 전반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사상은 전체 조선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고, 오늘날에도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허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그가 지었던 「성소부부고」에 실려
허균이 살던 16세기 말은 정신에서는 유교의 교조주의가 고개 들었고, 정치에서는 당론이 심화되었고, 사회에서는 사회혼란과 민생고가 매우 극심해졌고, 신분제도에서는 서얼금고가 더욱 더 가혹해졌다. 허균은 이런 모순의 시대에 살면서 개혁의 의지를 굳혔고, 개혁사상을 말했으며, 때로는 권력의
허균의 사상과 문학허균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불여세합(不與世合)’, 즉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 고 하였다. 이때의 '세상'은 기존의 완고한 중세적 질서를 말한다. 그는 벼슬살이에서 여섯 번의 파직과 세 번의 유배를 겪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순탄하지 못한 세상살이를 했는지 짐작케
도교에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있었다.
특히 그 사람이 역사적으로 변혁의 성격을 가질 때, 맹목성과 함께 신념으로 확대되어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본고에서는 “洪吉童傳”에 내재하고 있는 蛟山의 宗敎 사상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갖고 있던 宗敎 사상이 문학과 삶에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