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사상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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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균의 사상과 문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구속과 자유의 공간에서 빚어낸 문학

2. 허균의 사상과 문학
(1) 「호민론」(豪民論)과 「유재론」(遺在論)
(2) 종교관
(3)주체성과 독창성의 문학
(4) 허균의 시세계
(5) 허균의 혁신사상 - 홍길동전을 중심으로
(6) 교산소설 5편
본문내용
1. 구속과 자유의 공간에서 빚어낸 문학

허균(許筠,1569~1618)은 일반적으로 국문소설의 효시작으로 알려진 「홍길동전」을 지었으며 김시습, 박지원과 함께 우리 소설문학사의 뚜렷한 획을 긋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당시 엄격한 유교 윤리와 예학(隸學)에 사로잡힌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양명학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 천주교 등 여러 방면의 지식을 수용했다. 아울러 독창적인 우리 문학을 주장했으며 억압받던 하층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남겼다. 이처럼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후세의 문인들과 여러 사서에서는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더욱이 자신의 문집 어디에도 「홍길동전」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고전소설 작자로서의 영예를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2. 허균의 사상과 문학

허균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불여세합(不與世合)’, 즉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 고 하였다. 이때의 '세상'은 기존의 완고한 중세적 질서를 말한다. 그는 벼슬살이에서 여섯 번의 파직과 세 번의 유배를 겪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순탄하지 못한 세상살이를 했는지 짐작케 해준다. 그는 서얼(庶孼)들을 규합하여 역모를 꾀한 죄목으로 죽음을 당할 만큼 기존의 체제와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행위를 보여주었다. 광해군이 통치하던 당시는 당쟁이 격화되고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드러났으며, 주자학적 이념과 질서가 동요되던 시기였다. 그는 중세적인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체제 비판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다는 사실은 택당 이식(李植)의 『택당집별집』의 기록에 근거할 뿐, 그 밖의 어느 문헌에도 더 이상 자세한 사실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과연 이 소설 작품을 허균이 지었느냐 하는 문제는 학계의 큰 쟁점이 되어왔다. 이러한 저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방향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방법이 ‘허균의 사상’을 살피는 일이었다. 곧 허균의 사상이 「홍길동전」의 작품적 의미와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는 그의 문집 속에 흩어져 있는 여러 글을 통하여 그의 사상을 밝히고, 이것이 소설 작품 속에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을 말한다.
그 동안 허균의 사상적 특징으론 상당히 많은 부분이 거론되었다. 그의 뚜렷한 사상적 흔적으로는 정치사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성소부부고』에 ‘논(論)’의 형식으로 된 각종 글 속에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이념과 내정의 개혁, 국방정책의 강화, 신분계급의 타파 등으로 정리된다. 「정론」(政論)에서 그는 나라를 다스릴 때는 유능한 신하가 있어야 하며 권신(權臣)이나 소인배가 있으면 임금은 이상정치를 펼 수 없다고 하였다. 「관론」에서는 관원이 너무 많아 기구와 관료를 줄여 국고의 손실을 막아야 한다고 했으며, 「후록론」(厚祿論)에서는 관리에게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의 넉넉한 봉록을 주어야 부패와 착취를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병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