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독립군의 창립
일제가 만주침략을 자행한 1931년 9월 18일 당시 동북변방군 사령관 장학량의 군대는 일제 관동군보다 숫 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러나 장학량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쟁 회피 소극적 대책에 동의하여 처음에는 무저항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1932년 만주국을 세우자 만주군
독립군들은 곳곳에서 밀려나고 곤혹스런 상황이 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항쟁을 계속했다. 흑룡강 연변을 따른 시베리아 벌판은 곳곳이 독립군들의 기지였다. 그리고 다수가 중공군의 팔로군이 되어 항일전을 폈고 장개석 군대와 공동전선을 펴기도 했다. 그리하여 조국을 다
Ⅰ. 서론
3.1운동 후에 만주지역에서는 많은 독립군이 편성되었는데, 그것을 살피기에 앞서 먼저 그곳에서 항일무장독립군이 형성될 수 있는 배경, 즉 조건들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로 국내에서 항일의병항전의 풍부한 경험을 쌓은 노련한 많은 항일의병장과 의병들이 이곳으로 집결하였
독립군의 전투활동과 임시정부의 광복군의 활동은 이미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행위를 한 것과 사실상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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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것이다. 1931년 4월에 대한
3·1운동 직후 국내외 각처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합 과정에서 국내를 기반으로 성립된 한성임시정부를 내세워 임시정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명분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라도, 한성임시정부를 통합의 지표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국내에서 성립된 사실에서 찾아져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