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기록이나 연구가 많지 않았다. 다만 님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songofariran)'라는 전기로 인해 그에 대한 사실은 접할 수 있었다. 아리랑의 노래는 미국의 신문기자이자 계보학자였던 님웨일즈가 중화소비에트 운동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김산과 만나 1937년 초여름부터 그해 9월까지 4개월동안 2
님웨일즈는 그의 저서 아리랑(SongofAriran) 서문에서 김산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다. 김산 그는 그동안 남에서는 공산주의자, 북에서는 연안파,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탄생 100년인 올해 참여정부에서 그를 독립유공자로 추서하면서 그에 대한 진
SongofAriran'의 내용
님웨일즈가 조선혁명가 장지락을 보고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아리랑을 썼으나, 이 책 전반이 장지락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물론 님웨일즈라는 제 3자의 시각을 무시할 수 없지만, 되도록 객관적으로 아리랑의 내용을 통해 장지락이라는 개인적인 삶
님 웨일스(Nym Wales)를 만나 3개월 동안 20여 회에 걸친 구술을 통해 그의 혁명적 생애를 다룬 《아리랑SongofAriran》의 초고를 완성하였다. 이듬해 캉성[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일본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1941년 뉴욕에서 《아리랑》이 출판되었고, 이후 1946년 한글
아리랑을 부르는 순간만은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남북이 하나가 되어 왔었다.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삼는 이유는 첫째, 한민족이면 누구나가 알고 부를 수 있고, 둘째는 한국을 아는 이라면 아리랑을 ‘Songof Korea'로 알고 있다는 국제성을 감안한 것이고, 셋째는 남과 북에서 뿐만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