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래구와 북구를 경계하는 금정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데, 강과는 불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당시 이미 유적지의 일부가 잘려 나갔으며, 남은 부분도 조사 결과 장기간에 걸쳐 도굴되어 원형을 간직한 유구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확인 조사된 69기의 고분 중 9기만이 구덩식돌방무덤이
년(1601년)에 대구에 경상도 관찰사령이 설치되니 이는 오늘날의 대구, 부산, 울산 및 경상남북도를 함께 포함하는 영남의 중심 도시가 된 셈이다. 이 후 고종 32년(1895년)에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경상도가 대구부, 안동부, 진주부 및 동래부로 나누어지게 되고 대구부는 23개 군을 관할하게 된다.
년 이전까지)한일관계사 사적지 관련 5곳 이상을 방문하여 사건 및 관련 사항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쓰는 데 반드시 사적지 또는 유물을 배경으로 하여 본인의 얼굴이 들어가도록 촬영한 사진을 첨부한다. 예) 부산 ? 자성대, 금정산성 등(부산 시립박물관에서 관련 내용을 조사해본다) 대구 ? 국채보상
년(선조 34)에 오늘날의 대구에 자리잡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당시 경상도에는 대구 안동 진주 동래의 4관찰부를 두었는데, 오늘날의 경상북도는 대구부와 안동부 이외에 동래부의 일부를 포함했고, 1896년(고종 33)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경상북도를 떼어 대구에 관찰
(7)고려시대의 부산
고려시대의 부산에 관한 기록인『고려사』지리지에는, "동래현은 본래 신라의 거칠산군으로 경덕왕이 동래군으로 고쳤는데, 현종 9년 울주에 내속되었고, 뒤에 현령을 두었다. 온천이 있다"라 하였고, 또한 "동평현은 본래 신라의 대증현이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 동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