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고려시대의 부산
고려시대의 부산에 관한 기록인『고려사』지리지에는, "동래현은 본래 신라의 거칠산군으로 경덕왕이 동래군으로 고쳤는데, 현종 9년 울주에 내속되었고, 뒤에 현령을 두었다. 온천이 있다"라 하였고, 또한 "동평현은 본래 신라의 대증현이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 동래
유물만이 출토되었는데, 토기류는 모두 낙동강 동안(東岸)식의 특징을 보인다. 조선시대의 나무 널무덤은 모가 죽은 장방형의 무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널을 설치하였으며, 분청사기, 백자, 청동 숟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➅ 덕천동 고분군
낙동강 하류의 동안(東岸), 부산동래구와 북구
세기이전 지배층 무덤구조 한 눈에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은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고분군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고대 부산지역의 가야문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996년 10월 5일에 개관 하였다.
복천동 고분군은 부산시동래
1. 충렬사 (忠烈祠)
◈ 종 별 :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제 제7호 ◈ 시 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72년 6월26일 ◈ 소재지 : 부산시동래구 안락동 838
충렬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부산 지방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영의 영령을 모신 사당으로 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
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마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할 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마한을 구성한 기본단위는 소국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국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립 시기나 성립주체를 달리 하면서 각처에 산재하여 있었고 이들은 맹주세력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