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은 오로지 실천적, 실용적 측면에 집중되어있었기에 대부분이 자료의 수집을 통한 통계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내면에 있는 이론적 특성을 주목하기보다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 개화기 이전 화학적 요소가 포함된 한국의 기술
1. 청
한성순보 역시 그러한 성격을 띤다. 우리는 앞으로 한성순보에 나타난 기사, 그중 특히 화학 부분과 관련된 기사들을 통해 당시 발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먼저 그들의 기본적인 전통 자연관과 이를 기반으로 그들이 가지게 된 화학적 지식
한국언론사 수업을 통해 근대시기 언론인 중에 한명인 서재필에 대해서 배웠다. 수업을 통해 그가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행했다는 점을 배웠다.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간 신문이었던 점 외에도 순한글 신문으로 발행되었다는 점, 적극적 논조의 사설을 실었다는 점 등으로 언론의 발전에 중
19세기쯤까지는 당시 조선에는 아직 아무도 일본을 포함한 (이미 일본은 과학기술에서는 선진국에 근접해 있었다) 선진국에서 제대로 된 과학기술 및 기초 과학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교육받은 인재가 유입된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 진행되는 근대화 작업을 흉내 내어 과학
*『서유견문』참고 정보
가) 개화에 대한 열망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유길준은 전권대신들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접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와 자신이 견문했던 체험들을 기록으로 전하고자 했다.
『서유견문』은 기행문에 속하나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