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인류의 모든 것이고 인류의 모든 것은 문화란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적인 문화의 의미는 다소 추상적이고 단편적이기 때문에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문화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중국 호화과정의 예를 통해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사관은 이 시기 흥기한 사림문화와 융합하는 형태에서 발전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관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사림문화의 이해를 선행하는 편이 유리하다.
전국 시대 사관문화와 사림문화의 융합 관계는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먼저 사관은 사림계
본 임화는 바로 그것을 펄 벅이 리얼리즘의 전통에서 형상화해 세계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세계사가 전개되는 무대로 중국을---일본이 아니다!---주시한 그의 안목이 날카롭다.
동양문화를 신비화시키는 짓을 ‘근대인의 일종의 자포자기’ 또는 ‘근대문명의 말기 현상’으로 파악한 것
중국에 수립된 국가들의 영향력이 중국의 동북지방에 미치지 못했을 때에는 그 지역의 민족들이 흥기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도 했다. 이 국가들은 한반도 내의 민족들과 융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중국과 한반도간에 인적∙문화적 교류가
입각해 고대 삼국의 역사를 재해석했던 것이다. 그의 삼국역사에 대한 비판의식은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보다 훨씬 강했다. 유교적 강상론의 중심은 '양강음유(陽强陰柔)'에 있다. 이것은 남녀 차별적인 남성중심문화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권근의 역사서술은 진실한 역사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