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특히 그 때까지 조공 관계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중국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더 이상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적 일련의 과정에 따라 전통시기의 한중 외교관계를 볼 때 중국이 천하중심적 중화
정책이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북방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핵심적인 요인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북한과의 관계나 한반도와 관계된 지리적인 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여러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의 국익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서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시작되었다는 면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0년 북한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심각한 경제난과 군사부문만이 유일한 가용자원으로 남아 있다는 현실, 바로 이 두 가지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서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시작되었다는 면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0년 북한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심각한 경제난과 군사부문만이 유일한 가용자원으로 남아 있다는 현실, 바로 이 두 가지이다
외교의 중요성이 날로 커짐에도 불구하고 외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 외교역사에서 소위 외교를 잘한다고 칭찬받는 인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시대는 어떠한가. 조선시대의 실리적 외교정책이라고 하면 흔히 광해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