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력화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당왕조의 지방통치에 있어 내지번진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도독부와 주의 관계를 통해 당 전기의 지방행정제도를, 그리고 후기의 그것은 내지번진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II. 전기 지방행정제도 - 都督府와 州
1) 도독부와 주
경제와 행정은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하려 하지 않았으며, 정치체제는 관료와 지주계급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 집권왕조였던 청조에서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 집중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조의 황제들은 중국이 처한 내우외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있어 미흡한 면이 많았다.
제도를 개편한 것으로 지방통치제도도 양전사업과 함께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의 책, p. 24
이와 동시에 양전과 전지분급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3년 동안은 공전 및 사전의 모든 전조(田租)를 나라에서 거두어 군대와 나라의 수요, 관리의 녹봉을 충당하는 데 투입하려는
당대에 ‘율령체제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한데 비해 교학사는 ‘수의 제도를 계승하여 율령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다.’라고만 기술한다. 지학사와 금성은 당의 중앙행정조직에 대한 표를 함께 제시한다. 지학사는 여기에 발해의 행정조직을 함께 제시하여 동아시아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두
당 1명의 부방(副榜)을 뽑도록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부방 1명 당 대성에서는 40명의 고생을 추가하고, 중성에서는 30명, 소성에서는 20명을 추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 관행에 있어서는 학정들이 이 규정에 얽매이지 않았고, 총독 ․ 순무 그리고 다른 고위 학관들이 학정이 자격을 인정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