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금, 원, 송 시기에 대한 교과서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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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 금, 원, 송 시기에 대한 교과서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당보충
1.송나라 시기
2.유목민족과 정복왕조의 성립
3.동아시아세계
4.양적체제 분석
5.결론
본문내용
*당보충

당(唐)의 건국에 대해서, 교학사는 ‘혼란을 수습하고’라고 하며, 지학사는 ‘중국을 통일하고’ 라는 표현을 쓰고, 금성출판사는 ‘중국을 다시 통일하고’라고 기술한다. 세 교과서 모두 틀린 기술은 없으나 금성의 설명이 가장 세심한 듯 하다.
당의 영토확장에 대해서 세 교과서 모두 다루고 있고, 수․당의 영역을 비교하기 쉽게 나타낸 지도를 함께 제시하였다. 당의 세력확대 지역을 금성출판사는 현재의 지명으로 표기한 반면(티베트와 중앙아시아), 교학사는 당대시점으로 썼고(동돌궐 토번을 복속시키고 서역지방을 장악) 지학사는 이를 병기하였다.(중앙아시아와 돌궐) 금성은 본문은 현재적 지명(티베트)으로 지도는 당대시점으로(토번) 표기하여, 지도에 양자를 모두 써준(“토번(티베트)”) 교학사에 비해 아쉬움을 남겼다. 지도의 내용에 있어서 교학사가 수․당의 영역비교에 그친 데 비해, 금성출판사는 당의 10절도사를 표시하였고, 지학사는 주요교통로와 만리장성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지학사는 지도 왼쪽 여백에 “당대에 동서 문물 교류가 활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제시하여, 지도의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율령(律伶)에 대해서, 지학사와 금성출판사가 당대에 ‘율령체제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한데 비해 교학사는 ‘수의 제도를 계승하여 율령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다.’라고만 기술한다. 지학사와 금성은 당의 중앙행정조직에 대한 표를 함께 제시한다. 지학사는 여기에 발해의 행정조직을 함께 제시하여 동아시아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두 교과서 모두 하이퍼 텍스트를 통해 율령에 대한 부연설명도 달고 있다. 균전제와 조․용․조제, 부병제에 대해서는 세 교과서 모두 간소한 설명만이 되어있는데, 균전제를 토지 제도로, 조․용․조제를 조세 제도로, 부병제를 군사 제도로 설명하고 있어 미진한 점을 보인다. 균전제의 법제적 기본 원칙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환수하여 再給田함으로써 이들을 국가의 직접 지배 대상으로 확보하는 것이며, 租調役(庸)制의 기본 원칙은 인민을 개별적으로 파악하여 그들로부터 인두세적인 정액의 세역을 징수하는 것이다.
금성출판사는 당의 율령체제와 귀족에 대한 만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율령에 대한 농민의 기대와 귀족의 항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3개의 이야기를 4컷 만화로 구성하다보니, 교사의 부연설명없이 자체 학습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당의 사회․경제적인 면에 대해서는, 세 교과서 모두 과거제를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 설명에 있어서는 서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교학사가 ‘귀족세력견제를 위해’ 과거제를 실시하였다는 목적을 제시한데 비해, 금성은 ‘과거제를 실시하여 실력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려 했지만 여전히 귀족 세력이 정치와 사회를 주도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지학사는 ‘당의 귀족들은 과거와 음서를 통해 관직을 독점하고 여러 가지 특권을 노렸다.’고 서술하였다. 앞 뒤 잘라먹음이 없는 금성의 설명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