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층의 양극분해는 더욱 진전되어 빈농과 반프롤레타리아를 광범하게 창출시켰다. 한편 지주층은 소작료를 거둬들이는 쌀을 일본에 수출함으로써 새로운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농촌에 침투한 화폐경제를 이용하여 농민에 대한 고리대적 수탈을 강화해 나갔다. 부농층은 처음엔 자신이 구축해 왔
Ⅰ. 갑신 정변
1. 개화파와 갑신정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중국의 양명학, 훈고고증학 등 한학의 도입과 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대두되어 성리학은 조선 전통사회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으로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경제적 피폐와 관료의 극심한 횡포에 따른 민생고 문제에 대한 반
농민의 미납으로 인해 1860년대까지 사실상 해체되어 버렸는데, 그에 따라 농촌의 미곡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우리는 여러 사례를 통해 전국 도처에서 상민?중인 출신의 기백두락 규모의 지주들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개항 이전 그 규모나 성장 속도를 그리 과장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자연재해나
동학은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민중들의 도덕성 회복을 통한 의식개혁을 성취하고자 하였고, 그때까지 역사의 주체임을 단 한 번도 자각치 못했던 민중을 역사의 주역으로 사회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근대적 민중운동의 단초를 제고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동학의 민족운동은 동학 천도교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