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가운데 한국역사연구회가 다년간에 걸쳐 근대사연구의 신진 기예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편찬한『1894년농민전쟁』1˜5(역사비평사, 1988˜1995)는 농민전쟁의 배경?전개?귀결을 경제?정치?사상 등의 제분야에 걸쳐 종합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공적인 대기획물이다. 이 기획에 참가한
개항기와 임오군란, 갑오개혁 세 시기에 두 사람의 대립을 서술하고 있는데, 모두 명성황후의 대원군에 대한 그리고 대원군의 명성황후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한국근대사가 어지럽혀 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언에서 저자는 ‘민비나 대원군은 감정적 대립을 일삼았기 때문에, 안으로 새
붕괴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항하여 위정척사 운동, 동학, 농민운동 , 항일 의병 전쟁 등을 전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 협회 활동, 애국 계몽 운동 등을 통하여 근대 국가의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
한국근대사의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서 ‘고종’을 높이 추앙하기에 이르르고 있다. 고종이 영․정조 대에 제기된 ‘민국’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서구 정치사상을 수용하였으며 개화기 근대개혁을 선도하여 대한제국의 수립과 광무개혁을 이끌고 있으며 일제의 침략에 대항한 위대한 황제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