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상이 아직 그 이론의 틀을 신유학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현대의 정신 과학적 방법과 서구의 새로운 사상을 대폭 수용하여 그 실천적 틀에서나 이론적 틀에서나 개벽이 있어야만 동학은 신동학으로서 새롭게 태어날것이다. 이 재탄생의 몫은 최제우가 했던 것처럼 더 이상 어떤
민족주의가 민중에게만 있고 지배세력에서는 미약했다. 둘째로 그것은 구체적인 이념이나 정책으로 개발되기보다는 대중적 정념으로만 존재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족주의’는 미약하고 ‘정념적 민족주의’만 강했다. 이러한 점들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동학민족주의의 정치사상에 대
국가재정의 근원인 토지에 있어서도 隱結이 늘어나서 국가의 재정은 더욱 고갈되었다. 결국 늘어난 재정지출과 봉건지배층의 탐욕을 충당하기 위해 가난한 농민층에 대한 수탈은 가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방행정 말단에까지 이르는 관리들의 중간횡령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봉건적 수탈에 대한
인정할 수 없다.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들의 행복과 자유를 억지제도에 의해서 침해당할 수 없다는 사상이다.그러므로 인내천은 개인의 완전한 존중과 사회의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 궁극적인 지상천국 또는 이상적인 민주사회를 목표로 하는 이상적 개화사상이다.동학의 3대교주 손병희가 주장하였다.
동학의 민족운동은 동학 천도교로 대고(大告)한 이후에도 일제시대를 관통하면서 한민족에게 민족주의 의식을 깊숙이 심어 주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더욱이 그들이 표방하는 인내천(人乃天)․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은 한국적 민족주의사상의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