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세계적인 규모의 제국주의 단계로 들어섰으나, 그 당시 극동의 국제적 대립관계는 중국 분할경쟁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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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러일전쟁의 의미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에 위협을 느낀 일본 국내에서는 주전론과 반전론으로 국
러시아나 독일, 프랑스, 일본 등 현상 파괴적 세력들이 중국을 분할하거나 자국의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저지,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보호를 강조. 대륙에 강대국이 출현, 패권적 지배력을 확립하여 해상국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를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대륙 국가들간에 세력균형 정책
영향으로 경제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막부의 권위는 더욱 약화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존왕양이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일본 에도시대에 남서부 지역을 지배한 도자마다이묘로써 현재의 야마구치현을 지배했던 세력
조슈번과 규슈 남부지역을 지배한 도자마다이묘로써 현재의 가고시
일본군에 의해 무력으로 압살당함으로써 자주적 개혁이 좌절되었고, 일본 및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대상으로 되어갔다. 또한 열강의 중국 분할이 본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동아시아에 제국주의시대의 막이 열렸다.
2. 러일전쟁이 조선에 미친 영향러일전쟁의 결과는 포츠머스 강화회담과 을사조
일본의 한반도 침략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든 유럽 열강들은 안정적인 자원 공급과 공산품 소비시장을 찾기 위해 식민지 팽창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여파는 동북아시아에도 미쳐 영국은 1840년대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에 영유권을 확보했고 뒤이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