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이 올해로서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한 현상은 바로 젊은 세대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것을 이용하여 애국심을 고취를 시키려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지금 바로 ²여순항이나 203고지에 있는 노기장군 승전탑에 많
1904년 2월 8일에 벌어진 러·일 전쟁은 20세기 정치사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급격한 재정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국내적 요인들이 결합하여 결국 혁명이 일어나 전제정치가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군사적 승리로 국
슬라브 인 이전의 시대는 일단 접어두고 그 후의 역사만 볼때, 먼저 ‘루시의 나라’라고 불린 동슬라브 인의 국가가 있었다. 키예프가 그 중시이었으므로 ‘키예프 러시아’라고도 한다.
킹예프 대공국이 몰락하여 키예프 러시아가 불열한 후 짧은 기간의 블라디미르 대공국 시대에 이어 모스크바 대
레포트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부디 중국현당대사의 맥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런 이유로 가장 먼저 중국현당대사(혹은 중국근현대사)부분의 연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발췌해본다. 연표의 시작은 아편전쟁으로 한다.
1840 6월, 영국군이 광주를 봉쇄.
1842 8월, 南京조약 조인
레포트는 독소전쟁의 자세한 전개과정보다는 무심코 넘어갈 수 있지만 전쟁에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사항 즉, 전쟁 배경, 쏘비에뜨 적색군대의 형성과 모순 그리고 독소전쟁의 필연적인 이유에 중점을 두었고, 전쟁당시 소련군에 의한 인권유린의 모습들을 통해 당시의 소련에 한발 짝 더 다가갈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