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을 키웠고, 을파소를 국상으로 등용하여 진대법을 실시하는 등 현정을 베풀었다. 진대법은 백성들의 빈곤을 덜어 주고 농민층이 귀족 세력에 예속되는 것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계루부, 연노부, 소노부, 절노부 등 부명이 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 등의 방위명으로 전환되는 등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7 장수왕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귀족세력을 숙청함으로써 세력기반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왕권강화의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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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들을 대거 기용해 왕권의 지지기반으로 삼음.
이후 구 국내계 귀족세력과 신진귀족세력은 대립 구도 형성.
연개소문의 가문은 수중(水中)에서 태어났다는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다. 일급 귀족들은 물론, 이급귀족, 또 고구려 건국이래의 구귀족과 신흥귀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조 전승을 가지고 있었다. 시조의 신성함을 내세움으로써 지배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신성화된 왕권에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서 왕권이 강화된 중앙집권이 가능하여졌다. 우리가 잘 아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가 바로 이러한 강력한 중앙집권력이 가장 강력한 때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왕권도 왕위계승 싸움과 대외 원정의 실패 등으로 점차 약화되어감에 따라 귀족연립정권이 출현 하게되었다.
왕권의 확립과 전쟁의 성격 변화 : 이 시기의 전쟁은 귀족세력의 경제적 기반으로서 포로 획득의 의미가 컸던 과거의 전쟁과는 달리 총력전의 형태를 가졌으며 대왕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의미가 더 강해졌다. 왕토 확장의 의미는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지휘하는 친솔형親率型전쟁의 빈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