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당당히 맞선 고구려의 연개소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 본론
고구려는 초기에는 부족연맹국가 형태인 5부에서 시작하였다. 이때는 아직 왕권이 약했던 시기이다. 하지만 점차 중앙으로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서 왕권이 강화된 중앙집권이 가능하여졌다. 우리가 잘 아는 광개토대왕과 장
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그를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의 제1인자로 손꼽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도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들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앞서 서술하였듯이 연개소문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당태종을 망신시킨 인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는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발견하고, 아나키즘적 성향을 대폭 수용한다. 이전의, 사회진화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그의 사상은 한편으로 강자인 일본이 약자인 조선을 병합한 것을 정당화하는데 역이용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淵蓋蘇文) - ( ? ~ 665 )
■ 출생 년도는 알 수 없지만 강화도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음
■ 조선상고사 (단재신채호) - 긍정적인 시각으로 연개소문을 바라봄
‘연개소문이야 말로 고구려의 걸출한 민족 영웅으로,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손꼽히는 당태종, 이세민도 연개소문만큼
조선상고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구당서』 등의 기록에는 연개소문을 서부 출신이라 기록하고, 『삼국사기』 「개소문열전」, 『신당서』, 『자치통감』 등의 기록에는 연개소문을 동부 출신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은 어떤 출신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한원(翰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