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육체적 임재설과 쯔빙글리 의 상징설의 중간에 있는 칼빈의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였다.
3. 루터와 멜랑히톤의 관계(상호보완적인 관계)
교회역사에 있어 위대하고 창조적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맞는 지도자들을 서로에게 도움과 위로가 되도록 연결시켜 주셨다. 16세기 종교개혁 시
인문주의임이 밝혀졌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신학이었던 스콜라신학은 중세 전체를 지배하였던 사상으로서 피터 롬바르드의 교의학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의학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러한 스콜라주의는 A. D. 1100년경에 시작되어 종교개혁에 이르러 종결된다. 11-12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였다.
바로 이 시기에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1469~1527), 영국의 토마스 모어(1477~1535) 같은 정치사상가가 배출되었고 미켈란젤로(1475~1564)나 라파엘(1483~1520)과 같은 탁월하고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들이 선보였으며 한쪽에서는 신세계를 발견하여 전 유럽인을 흥분의 도
루터의 개혁사상을 고찰하여야 한다.
여기에 나타난 루터의 개혁사상을 보면, ‘하나님 중심의 종교사상’,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라는 사상’,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는 사상’, ‘십자가의 신학’, ‘만인사제론’, ‘오직 성경으로만’ 등의 사상이 있음을 보았다. 이것들은
루터 연구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하지만 루터의 개성과 개혁운동의 동기에 대한 문제와 루터의 신학을 이해하려는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면 종교개혁가로서의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상으로 루터가 중요한 위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