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다. 그녀의 처참한 죽음은 당시 항일 의병활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오늘날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최대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자료 인멸에 이은 외국 기자 매수와 외교 공세로 인해 이 사건은 역사의 그늘 속에서 왜곡된 채 잊혀져가고 있다. 명성황후가 시해
대원군과 훈련대 관련설이다. 많은 사료에는 을미사변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개입이 나타나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정치적으로 적대적이었던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며느리인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을까?
흥선대원군은 일본의 요구에 따라 경복궁으로 들어온 뒤 거의 유폐되
일본의 한반도 지배 정책에 반하는 의사를 강경하게 펼치다가 사건은 일어난다. 아무리 국가적으로 적대적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국가의 국모를 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건만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일본인들은 역사적인 모든 증거자료를 인멸해 버린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한일 간의
역사적 시련을 수반하고 있었다. 개항전후의 조선사회는 정치적 혼란과 재정적 궁핍, 그리고 사상의 혼돈 등 전통사회의 내재적 붕괴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한 가운데 명성황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배경, 대원군과의 갈